여행,맛집

천주교성지순례 갈매못순교성지 및 충청수영청 을 돌아보다

천주교성지순례 갈매못순교성지

충청수영청 을 돌아보다

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게 하려고 사부작 사부작 비와 바람은 꽃을 흔든다 지난 주말은 날씨도 오랜만에 맑고 쾌청했다 서울엔 미세먼지도 나쁨 이라했지만 충청지방은 대체로 맑음상태에 가까웠다  가까운 지인몇몇분과 함께 봄이라는 계절이 가기전에 성지순례 를 한번 다녀오자 했다 천주교 성지 갈매못순교성지  이곳은 충청남도 보령시 갈매못  바닷가에 있는 천주교성지 이다  아직 백일홍나뭇가지에 잎사귀가 돋아나기 전인가 가지만 앙상하게 서있다 이번 봄비에 새싹이 올라오려나 

서울에서 약 3시간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는데 날씨가 좋아서 봄나들이 가는 여행객들이 많았는지 꽤나 길이 막혔다 아침7시 30분에 출발 중간에  서해안고속도로휴게소  화성휴게소 에서 쉬어 화장실도 가고 다리절임도 풀어주고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역시 우리나라 화장실이구나 청결하고 깨끗하고 고급지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오전11시20분이 되었다 부랴부랴 미사에 참석은 할수있어 다행이었다 입구에 도착하니 이렇게 바닷가 가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성당이 세워져 있었다 이번이 3번째인데 올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그만큼 나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이렸다 ▼ 아래는 성당 전경이다


주차장을 지나 약간의 언덕을 계단따라 오르니 성당앞 대문에 이런 십자가가 떡 버티고 있다 이곳을 통과하면 성전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곳 어디를 가든 입구엔 이런 글귀가 써 있다 "이곳은 기도하는 집입니다"하고 말이다 절로 정숙해지게 마련이다▼ 성당입구

성당 내부에 들어서니 벌써 전국 각지에서 성지순례 를 하러 온 신자들이 미사참례 를 위해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제대 뒤로 보이는 스테인트글라스 가 눈에 확 들어온다 자연채광에 의해서 비춰지는 오색찬연한 저 빛속에 비춰지는 붉은 다섯 형상은 이곳에서 순교하신 순교자들을 형상화 해놓은것이란다 수백명이 순교해서 돌아가신 이 장소에서 지금의 내가 서있다니 선조들의 신앙이 절로 느껴진다


미사가 끝나고 활짝 열리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가 스르르 밀려나간다 순간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니 그저 감탄사만 나올줄 알았는데 그런 감탄이 나오기 이전에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했던 그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다 ▼ 성당스테인드글라스


▼ 바닷가물빛과 하늘의 광채와 어울리기라도 하듯  보령시 버스 정류장 표지판이 정겹다



▼ 성당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오다가 만난 보령 앞바다 갈매못순교성지 이다


▼ 성당 지붕과 외관이 참 멋스럽다 건물 아래로 내려가면  성체조배실 이 있어 누구라도 잠시 묵상하며 기도해도 좋다


▼ 다섯분의 성인 들이 이곳에서 처형을 당하신 곳이라 성전으로 올라가는 입구엔 이렇게 하나하나 성인들의 삶의 지표가 적혀있다 이뿐아니라 더 많은 순교자들이 돌아 가셨지만 여기 이분들은  그 당시 워낙 죄목이 크게 걸려있었기에 이름이 남아 있었다 한다 그래서 나쁜일도 크게 해야 된다는 사제의 말씀처럼 고초가 결국은 후세에 이렇게 남게 되는구나 하는게 증명이라도 되는듯하다


↘ 마당입구에 들어서면 주차장옆으로 예수성심상이 크게 서있다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 하고 있다

▼ 이곳은 어디를 가도 순교자들의 피가 흘려 고통을 받던 자리라고 한다 하물며 우리가 지나온 주차장자리고 순교자들을 침뱉고 조롱하던 자리라고 ..그래서 놀이공간 카페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사람들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실수있도록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1839년 천주교 박해는 기해박해라고  무시무시한 박해사건이 일어난다 당시우리나라에 선교를 하러 들어왔던  프랑스선교사를 살해한 책임을 묻는 편지를 상자에 담아 돌아갔다고 한다 갈매못이란 원래 말에게 물을 먹이는 연못이었다고 한다 갈마연 에서 온 말이다 그러나 이곳은 바로 참혹한 형장으로 보령의 섬 중에서 가장 멀리 있던 섬 외연도에 헌종12년(1846년) 프랑스 함대 세실 사령관이 세척의 배를 끌고와 정박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정에서는 조선 영해 침입사건으로 간주하여 1866년 3월 30일 흥선대원군이 서양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외연도와 가까운 이곳 갈매못에 다섯 성인들을 처형하게 된다



이곳 갈매못 순교성지 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다섯분의 천주교 성인 이 군문효수형을 받아 순교한 후 인근 모래사장에 묻힌 곳이다 갈매못-서짓골 성지 순례길은 다블뤼 주교.모매트로 신부.위앵 신부.장주기 요셉회장의 유해가 신자들에 의해 이곳 오천면 갈매못부터 미산면 서짓골 성지로 옮겨진 길이다 신자들은 12일간 풍랑과 뇌우 속에서 바닷길과 산길을 통해 유해를 운구하여 안장하였는데 두달후 그 신자들 역시 발각되어 순교 하였다고 한다




충청수영 갈매못 성지순례길 안내

오천해안로 

오천해안로 534번지

오천해안로에서 솟재수해길로 좌회정 

손재수 해길레서 솟재길로 좌회전

솟재길 221번지 인근 

솟재길 253번지 인근

오천초등학교 앞에서 우회전

충청수영정 입구 영보정 앞 

▼ 순례길 안내도



수영에서는 갈매못을 처형장으로 정해 처형했으므로 이곳이 순교유적지가 된 것이다 다섯 순교자의 유적지가 된 것이다 다섯 순교자의 유해 중에서 세 선교사들의 유해는 일본 나가사키 로 옮겨졌다가 1894년 서울 용산신학교를 거쳐 1900년 서울 명동성당의 지하실에 안치 되었다 천주교성지 는 명동성당도 마찬가지로 순례지 중에 한곳이다



이곳 충청수영은 병인 박해 때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다 특히 1866년 3월 30일 갈매못순교성지에서 순교한 5명의 성인인 다블뤼 주교,오메트르 신부.위앵신부.장주기요셉.황석두루카와 연관이 깊다 이들은 서울에서 1866년 3월23일에 군문효수형을 선고받고 충청수영으로 이송되어 장교청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1866년 3월 30일 술재고개 현 솟재고개를 넘어 수영에서 약 10여리 떨어진 근처의 바닷가 모래사장 갈마 진두 현 갈매못 순교성지로 가서 순교 하였다 

초기에 천주교인들의 신앙 활동이 매우 활발하였던 내포 지방의 연못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조선 제 5대 교구장이던 주교 다블뤼(Davelu)는 주교의 복사이자 회장인 황석두와 함께 당진에서 체포되었고 이 소식을 듣고 신부 위앵(Huin).오메트르(Au-maltre)도 자수하였다 이곳 순례지도 철이 철인만큼 요즘 여행사 마다 성지순례 코스가 많아 단체여행객들이 많이 오간다


충청수영 진휼청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412호  조선시대 충청수영성 안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진휼청으로 추정되는 이곳 을 비롯해 객사 와 삼문 만이 남아 있다 진휼청은 흉년에 충청수영 관내의 빈민 구제를 담당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충청수영이 폐지된 이후 민가로 쓰이다가 1994년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보존하고 있는데 정면 5칸 측면 2카의 팔작지붕이며 대청 .온돌방 .툇마루.부엌등이 남아있는데 충청수영 고지도 등에 나타난 건물 배치로 볼때 진휼청으로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수영청 근처엔 넓은 공간이 있는데 사람들의 쉼터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일행도 처음엔 무슨 장소인지도 모른채 쉬면서 나물도 캐는 한가로운 여유를 부렸다 알고 보니 이곳역시 순교자들의 숨결이 어린곳이었다 

다음 일화는 이곳을 지나치기엔 너무 유명한 일화가 아닐수 없었다



다섯 순교자는 말을 타고 이곳 충청수영으로 압송되었다 성 목요일 3월29일 저녁에 그들은 형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다블뤼 주교는 포졸들이 이튿날 길을 꽤 많이 돌아 이웃 읍내에 가서 사형수들을 구경시킬 계획을 서로 짜는 것을 들었다 어디를 가든 성지순례 에서는 더 심한 고초도 많이 들었지만 천주교성지순례 는 정말 이루 말할수없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신앙을 지켰다는게 참 놀랍기만하다 이어서 순교자의 말이 더 놀랍다 자신이 죽음에 이르렀음에도 다음 말을 하였다



그는 즉시 그들의 말을 중단하며 외쳤다 "안되오.당신들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오.내일 형장으로 곧바로 가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내일 죽어야 하기 때문이오."...포졸들의 우두머리와 포졸들과 군사들 모두가 한 마디 대답도 못하고 그가 시키는 대로 어김없이 시행하게 되었다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하권p.434에서-




하늘도 파랗고 땅도 파랗고 바다도 파란 4월이다 누가 이런 계절을 만들수있을까 말이다 



▼ 냉이꽃 융단을 깔아 놓은듯

우리는 가져온 간식을 돗자리위에 펼쳐놓고 잠시 쉬어가도 될만한 공간에서 쉬었다 성지에서는 식사가 미리 예약된 부분만 되서 여유

가 없다고 하니 밖으로 나와서 사먹기로 했는데 갈곳이 마땅치도 않고 해서 그냥 싸간 간식만 먹고는 나물캐기 삼매경으로 빠져 버렸

다 하하하  오천항에 가서 매운탕이라도 먹고 올걸 아쉽다